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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당한 인터뷰
    해외취업이야기 2013. 8. 30. 07:48

    지난주, 꽤나 유명한 금융계 헤드헌팅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늘 그렇듯이 무례하고 장사치스러운 헤드헌터들의 전화는 귀찮고 또 귀찮았기에 대충대충 이야기 하고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연락온 Dan이라는 녀석은 달랐다.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일을 시작한지 몇년 안된것 같았는데,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작지만 꽤나 잘나가는 트레이딩 소프트웨어 펌에 지원해보자고 했다. 말이 참 많았는데, 상당히 예의 바르고 설득력이 있었다. 추진력도 있었다. 어찌어찌 해서 지원을 하게 되었고, 하루만에 그 회사 데브 리드로부터 코드리뷰 테스크를 해서 보내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일부러 엉망으로 짜놓은 150~200줄 정도 되는 코드였다. 


    Dan은 이 리뷰를 최대한 빨리 해서 보내는게 좋을것 같다며 나를 설득했다. 당일 하필 식사약속이 있어서, 밤 11시에 부리나케 귀가해서 2시간만에 작성해서 보냈다. 졸려서 제대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에 푹 자고 다음날 개운하게 출근을 했다.


    그날 오전에 Dan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회사의 데브 리드가 내 리뷰를 보고 엄청나게 만족했다면서, 당장 인터뷰를 하고싶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이런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며 왠만하면 뽑을것같은 기세라면서 오히려 자기가 엄청 들떠있었다.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 자신이 있었기에, 흔쾌히 승락하였다. 갑자기 휴가를 내는 바람에 매니져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열씸히 일했고, 휴가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 


    2일 후에 인터뷰가 잡히고, 원래 2번의 인터뷰를 보는데 하루에 몰아서 보기로 했다고 했다. Dan은 또 이것에 흥분해서, 이 회사가 이런제안을 한적이 처음이라며 뽑힐 가능성이 매우 높은것 같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석은 2일간 하루 1시간씩 전화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모의 인터뷰(?) 같은것까지 연습시켜주면서 열씸히 백업을 해주었다. 집에서 꽤 멀기 떄문에 휴가를 쓰고 기차를 타고 가야 했는데, 인터뷰 시간까지 내가 편한 시간으로 바꿔주어서 크게 무리는 없었다.


    인터뷰 당일, 나의 정중한 사양에도 무릅스고 Dan은 Waterloo 역까지 마중나와서, 튜브를 타고 나를 그 회사 리셉션까지 에스코트 해주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헤드헌터가 다 쓰레기같은건 아니구나 하면서. 자기가 커피도 한잔 사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기는 자기 고객은 모두 이렇게 관리한다며, 나중에 내가 이직할때나 팀장이되어 사람을 구할 때도 자기가 함께 일할수 있으면 좋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인터뷰 잘보라며 떠났다. 


    리셉션에서 담당자를 찾으니, 리셉셔니스트로 보이는 여자가 아무말 없이 나를 회의실로 데려가더니 3장짜리 페이퍼를 주고는, 1시간 10분동안 답을 적으라고 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여 이것 저것 물어보았지만, 자기는 잘 모르니 1시간 10분후에 오겠다며 나갔다. 페이퍼를 펼쳐보니, 왠 학부때 풀던 문제같은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손코딩은 대학 이후 한번도 안해본지라 시간이 초과되어 끝까지 풀지 못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이런 사소한것들은 물론 중요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과 경력은 이런 작은부분으로 테스트 할 수 있는것이 아니기에 별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사실 푸는 동안 좀 짜증이 났지만, face to face 인터뷰에서 다 이야기 하면 될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1시간 10분 후 여자가 들어오더니, 페이퍼를 가져가면서 한마디 했다. 건물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시험지 채점을 하고 헤드헌터를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건물 밖이라.. 보통은 키친에서 차한잔 타주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하는데. 조금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나가서 동네를 둘러보고 커피한잔 하고 쉬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서, Dan에게 연락해보니 시험지 채점 결과가 낮아서 face to face를 보지 않겠다고 연락이 방금 왔다고 했다. 


    ...........?


    소프트웨어 개발 라이프사이클에 능하고 새로운 개발방법론을 도입하고 고성능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는 경력직 c++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뽑고싶다고 하길래,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먼데서 휴가까지 내고 왔더니만, 대학 기말고사같은 페이퍼 하나로 나를 평가하고 얼굴조차 보지 않고 인터뷰를 거절하다니. 게다가 인사조차 하러 나오지도 않다니. 황당해서 한동안 멍때리면서 런던 시내를 걸어다녔다. 사실 한동안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무슨 회사가 사람을 이렇게 뽑나 싶었다. 


    런던근처에 일하시는 형님이 마침 맥주 한잔 사주시러 나오셔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조금 진정할수 있었다. 그러다 든 생각은, 어차피 엔지니어를 그렇게 대하는 회사에서 일하는건 절대 즐거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experienced software engineer를 뽑으면서 coder 뽑듯이 하는건, 제대로된 소프트웨어 개발팀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재밌는 경험을 했고, 아무리 finance 쪽으로 가고싶다고 해도 아무 회사나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서 굴르기에는 내 능력이 너무 아깝다. 


    일단 곧 나올 연말 보너스부터 받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차근차근 지원을 해야 겠다.

    내상을 치유할 시간도 좀 가질 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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